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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C 서포터즈] 세 연구자의 귀국 이야기 – 김의열, 이현정, 최은진 (안현섭) (독일/인공지능)

  • 작성자 profile_imageKERC1
  • 날짜 November 03. 2026

본문

세 연구자의 귀국 이야기

 

고국을 떠나 긴 시간을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보내는 모습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낭만 그 자체로 보일때가 많지만, 대개는 그저 치열한 또 다른 일상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금세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구자로서, 전문가로서 무르익기 시작하면 다시 자문하게 됩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되는 걸까?”

 

여기 전공과 분야는 모두 다르지만 그 값진 여정의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하고 그 질문에 답을 내린 후 귀국 비행기에 올랐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다시 만날 것을 알면서도 헤어짐은 늘 아쉬웠고. 그래서 더욱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봄의 끝 무렵, 캠퍼스 뒷마당에서 잠깐 만나 맥주 한 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처럼, 한국 어딘가에서 우린 다시 어제 만났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인터뷰 형식으로 나눈 대화가 또 비슷한 여정을 계획하거나 그 가운데 있는 분들, 그리고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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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직후 서면에 담지 못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저 나누며 추억여행을 떠났다. 역시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고,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신기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실물과 아주 조금 다릅니다… )

 

 

1. 독일에서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안현섭: 오늘 세 분이 이렇게 모여 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다들 독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셨는데요, 우선 각자 어디서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부터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의열: 저는 2016년에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전산역학 석사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석사 논문을 수행하던 중 지도교수님의 제안으로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토목 및 환경공학부 산하 철도 및 교통공학연구소(IEV)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같은 연구 주제를 확장하여 박사과정까지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는 IEV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박사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연구 분야는 실제 철도 차량을 대상으로 결함 실험을 수행하기 어려운 점에 대한 대안으로, 축소 철도 차량 모델을 이용해 소음 및 진동 신호를 분석하고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었어요. 바퀴 결함을 구현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진동 신호에서 유의미한 특징을 추출해 결함 상태를 판단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ATO(Automatic Train Operation)와 같은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고 개선하는 연구도 함께 했고요. 2023년부터는 중국 허페이대학교 도시건설 및 교통공학부에서 겸임 연구원을 병행했고, 학위는 2024년 여름에 취득했습니다.

 

이현정: 저는 2015년 6월에 독일 알베르트-루트비히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도시기후변화 및 미기상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2016년 8월부터 2023년 9월까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 환경보전국 도시기후연구부에서 기후변화 분야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어요.

 

최은진: 저는 슈투트가르트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 연구소에서 박사 과정 중이었습니다. 주로 유연 재료, 특히 물에서 기동하는 하이드로겔 재료를 기반으로 스마트 인공장기나 액추에이터를 통해 의공학적 응용을 고민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안현섭: 세 분 다 슈투트가르트 근방이셨네요. 처음 독일로 떠나실 때,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아예 현지에 정착하려고 하셨나요?

 

 

2. 처음 독일로 떠나실 때, 돌아올 생각이 있으셨나요?

 

이현정: 당시에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거나 유럽에 정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학업과 연구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독일로 떠났습니다.

 

최은진: 저도 뚜렷한 계획은 없었어요. 다만 현지 정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김의열: 저는 처음부터 독일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독일에는 공부하러 간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나중에 한국에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Robert Bosch GmbH와의 합작사에서 일하면서 독일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부터 그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공학적 문제에 접근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Made in Germany라는 표현을 보면서 왜 독일 제품이 신뢰를 받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 차이가 단순히 기술이나 이론의 차이라기보다 공학적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 작은 것들을 쌓아가는 방식, 기본을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유럽으로 떠날 때는 현지 정착보다는 독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나중에 한국에서 그 경험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안현섭: 세 분의 출발점이 조금씩 달랐네요. 김 박사님은 처음부터 돌아올 생각이 확고했고, 이 교수님과 최 박사님은 열린 마음으로 시작하셨네요. 그렇게 시작하신 독일 생활에서, 커리어 측면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됐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3. 유럽 체류 중 가장 큰 커리어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최은진: 박사과정을 하게 된 랩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 랩의 분위기나 연구문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무리 멍청한 질문을 해도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질문이나 의문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령 키워드를 알려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식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어요. 귀찮아하지 않고 진심 어린 호의에 참 감동했고, 한참 부족한 제가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정: 저도 박사 지도교수님과의 만남과 지속적인 학문적 성장이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독일 및 EU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구 역량을 넓힐 수 있었고, 독일·유럽·미국 등 다양한 국제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은 점도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김의열: 저도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석사논문을 계기로, 제게 책상 한켠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매주 제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신 지도교수님과 슈퍼바이저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를 정할 당시, 적당한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관심 있는 주제를 더 찾아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수업을 담당하시던 교수님이 공동 지도 건으로 내부적으로 공유한 논문 주제 공지를 보게 되었고, 철도 차량의 바퀴 결함과 소음 및 진동 신호 분석이라는 내용이 제 관심사와 잘 맞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을 계기로 연구소에서 계속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이후 박사과정으로도 연결되었어요.

 

안현섭: 세 분 모두 결국 사람이 전환점이었다고 하시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네요. 삶이 그렇듯이 좋은 연구 환경이란 결국 사람에서 시작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그렇게 정들었던 독일을 왜 떠나기로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귀국을 결심하신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4.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이현정: 직업적인 이유보다는 배우자의 귀국이 가장 큰 계기였습니다. 개인적인 삶의 방향과 가족의 선택을 함께 고려하면서 한국 귀국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김의열: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제 마음 사이에 괴리감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일이 재미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제 이름을 걸고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자리와 좋은 환경이어도 실제로 제가 하는 일이 현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지 계속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상태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누군가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환경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는 길에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나에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적인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저는 저답게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또라이 같고 무모해 보여도, 세상에 저 같은 사람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제가 의미 있다고 느끼면 돈키호테처럼 풍차로 달려가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영향도 컸습니다.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았고, 어머니와 동생도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한국에 잠시 머물면서 자리를 찾아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다시 독일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그 점은 제게 매우 크게 남아 있어요.

 

최은진: 저는 코로나라는 특수성과 가족관계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시기에 외국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모든 걸 던지기 직전이었어요. 그래서 코로나 시기가 정리될 즈음에 최대한 빠르게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직업적인 이유는 크게 없었어요. 정말 다 던지기 직전이어서 이 부분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안현섭: 세 분의 귀국 계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없네요. 이 교수님은 가족, 김 박사님은 일의 의미, 최 박사님은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하지만 결정의 무게가 가볍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특히 유럽에서 이룬 성취를 잠시 접어두고 다시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귀국을 고민하시면서 가장 걱정됐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5. 귀국을 고민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현정: 오랜 기간 독일의 연구 및 행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빠른 업무 문화와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귀국 후 약 2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적응 과정에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은진: 귀국 당시에는 개인적 힘듦이 너무 심해서, 그 이후의 커리어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머리 한구석에는 '이제 끝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귀국 후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일을 했는데, 여전히 연구 일이 재밌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김의열: 솔직히 말하면, 귀국을 고민하면서 크게 걱정했던 부분은 없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커리어를 준비해서 돌아온 것도 아니었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반드시 정해진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크지 않았어요.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자리를 바로 찾기 어려울 수도 있고, 경제적인 부분도 다시 부딪혀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원래 많은 것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특별히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 필요하면 어릴 때처럼 노가다를 하든 쿠팡을 가든, 먹고사는 방법은 어떻게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국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걱정이 맞았다거나 틀렸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걱정을 귀국 결정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안현섭: 김 박사님 말씀이 참 인상적입니다. "걱정을 결정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표현이요. 그리고 최 박사님이 느꼈을 고충도 공감이 가네요. 그 결정을 주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귀국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걸리셨고, 가족이나 동료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6. 귀국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걸리셨나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최은진: 코로나 시기에 지속적으로 고민을 했으니 아마 1년 정도는 고민했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많이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힘들었거든요. 졸업 논문을 거의 다 썼을 즈음에 계약 기간을 갱신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그때 지도교수님이 어떻게 할 거냐고 하셔서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봐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교수님 앞에서 펑펑 울었었거든요.

 

이현정: 저는 배우자가 먼저 귀국한 이후 약 2년 동안 독일과 한국에서 떨어져 지내며 한국 내 구직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가족들은 귀국을 매우 반가워했지만, 독일 동료들과 지도교수님은 이미 현지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김의열: 귀국 결정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뒤에는 이틀 정도 만에 결정을 정리했고, 주변에도 바로 이야기했어요. 이후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정리한 뒤 한 달 정도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재미없다고 느끼면 일단 돌아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반면 지도교수님과 슈퍼바이저, 주변 동료들은 대부분 말렸어요. 제가 계속 연구를 이어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굳이 지금 돌아가려는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안현섭: 세 분 모두 각자의 결정의 배경에는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의 이동도 고려하셨나요? 유럽 내 다른 나라라든가, 미국이나 아시아 쪽으로요.

 

 

7. 한국 외에 다른 나라로의 이동도 고려하셨나요?

 

이현정: 배우자의 귀국이 결정적인 이유였기 때문에 한국 외의 다른 국가로의 이동은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최은진: 다른 나라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는 것을 고민하긴 했어요. 박사과정 후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기에는 연구적 역량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이 너무 커서 쉼을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어요.

 

김의열: 한국 외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다른 나라를 선택지로 두고 비교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곳이 한국이라고 생각했어요. 커리어만 생각했다면 독일이나 중국에서 연구를 계속 이어가는 길도 있었지만, 그때 제게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가 더 좋은 조건을 주는지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도 특별히 복잡하지 않았어요. 제 집이 한국이고, 부모님과 동생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제 공부와 연구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가족 곁에서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안현섭: 결국 세 분 모두 한국행의 결정적인 이유 안에 "가족"이 있었던 점은 확실하네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게요. 한국 정부나 기관에서 해외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잖아요. Brain Pool이라든가. 혹시 활용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8. Brain Pool 등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셨나요?

 

이현정: 네, Brain Pool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 직장을 휴직하고 2021년 5월 21일부터 2022년 5월 20일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어요.

 

김의열: 직접 활용한 적은 없지만, Brain Pool 같은 한국의 인력 유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도 한국과학기술자협회 행사를 통해 관련 제도가 있다는 것은 들었어요. 중국에 있을 때는 제가 지원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는데, 중국과학기술자협회 행사에서 한국연구재단에서 오신 분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Brain Pool을 비롯한 관련 제도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최은진: 저는 Brain Pool밖에 들어보지 못했어요. Brain Pool은 지원 시 박사학위가 있는 상태에서 외국에 있을 때 지원할 수 있는 조건으로 봤는데, 저는 박사학위가 나오기 전에 귀국을 했기에 자격요건이 안 돼서 지원을 못 했습니다.

 

안현섭: 이 교수님은 직접 활용하셨군요. Brain Pool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으신 경험도 있으신가요?

 

이현정: 개인적으로 경험하거나 활용한 다른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최은진: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후 연구원을 할 때,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박사 후 국내연수' 지원을 해서 과제 선정이 되어 진행했습니다.

 

김의열: 한국에서는 Brain Pool 외에 별도로 도움을 받은 프로그램이나 사업은 없었습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허페이대학교에서 저를 겸임 연구원으로 초빙하는 과정에서 학교 차원의 지원을 받았어요. CRRC 베이징 본사에서 발급한 추천서와 허페이대학교의 추천서를 안후이성 과학기술청에 제출해 외국인 전문인력 취업허가를 받았고, 그 덕분에 비자 발급이나 입국, 행정 절차가 무척 수월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교내 아파트, 행정 지원, 통역 지원도 받았고요.

 

안현섭: 그렇다면 이런 인력 유치 제도가 해외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9. 인력 유치 제도, 해외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나요?

 

이현정: 아직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우수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홍보가 필요하고요, 또한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연구자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점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해외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은진: 다른 인력 유치 제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Brain Pool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그 이외에는 대부분 박사후연구원을 하다가 임용되어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이 우물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보의 정확성이나 접근성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지원 범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정보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의열: 저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이나 중국에 있을 때 한국과학기술자협회 행사나 관련 세미나에서 한국연구재단 담당자분들이 직접 설명하시는 경우가 있었고, 그런 자리를 통해 Brain Pool 같은 제도를 접할 수 있었어요. 물론 모든 해외 연구자가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 기관과 연결되는 것을 고민하는 단계라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경로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넓게 홍보하는 것보다, 실제로 관심을 가질 만한 단계에 있는 해외 연구자들과 직접 접점을 만드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지금처럼 해외 연구자들이 모이는 행사나 네트워크를 통해 꾸준히 설명하고 연결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현섭: 이 교수님 말씀처럼,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이런 대화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연구 환경 이야기를 해볼까요. 유럽에서 오래 계시다가 돌아오셨을 때 연구 환경에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가 무엇이었나요?

 

 

10. 유럽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무엇인가요?

 

김의열: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연구가 돌아가는 호흡과 구조였습니다. 제가 속했던 독일의 연구소는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곳이었고, 교수님 개인의 연구실이라기보다 연구소 자체의 역사와 정체성이 강한 조직이었어요. '박사과정'도 학생이라기보다 연구원으로 계약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학위과정을 병행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 구조 안에서는 연구 주제나 일하는 방식이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이어졌어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토론과 준비에 시간을 많이 쓰고,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역할과 절차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느리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거나 갑자기 방향이 크게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학생 중심의 연구실 구조가 강하고, 연구비, 논문, 학생 지도, 행정 업무가 빠르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 자체에만 긴 호흡으로 집중하기보다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 함께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고 느꼈어요. 물론 어느 쪽이 무조건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독일은 독일의 제도와 문화 안에서 만들어진 방식이 있고, 한국은 한국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이현정: 저도 연구 문화, 행정 시스템, 네트워크 형성 방식 등 전반적으로 큰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 행정 업무의 비중이 매우 높아 평일 주간에는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수업 준비와 연구를 저녁 이후나 새벽 시간까지 이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업무라도 독일에서는 수주의 준비 기간이 주어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상당한 차이를 체감하고 있어요.

 

최은진: 박사과정 동안 있었던 곳은 연구소였기에 대학교 소속 연구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는 박사급 인원들이 많았고, 일반적인 행정 일부터 개인적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어요. 귀국 후 일했던 곳은 대학교 내 연구실이었기에 박사급 인원이 거의 없었고, 행정도 해야 했습니다. 과제 위주의 업무량이 컸고, 자유롭게 개인 연구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으나, 박사급 인원들과 논의를 하고 네트워크를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안현섭: 세 분 모두 행정 업무 부담과 빠른 호흡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하시네요. 아무래도 한국 특유의 문화가 가진 강점이자 애로사항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으셨나요?

 

 

11. 한국에 정착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이현정: 연구 시스템에 대한 적응은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또한 경제 시스템, 복지 제도, 노후 준비 방식 등에서도 독일과 한국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체감했어요. 아직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의열: 계획을 세워서 한국에 정착하러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라고 할 만한 것은 크게 없었어요. 처음부터 어떤 제도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극복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돌아온 뒤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최은진: 다행히 먼저 와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었던 가족이 있어서, 한국에서의 삶은 어려움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대부분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척척 잘 흘러가서 기뻤어요.

 

안현섭: 최 박사님은 오히려 한국에 와서 더 편하셨다니, 그것도 흥미롭네요. 그렇다면 독일에서 쌓으신 연구 경험이나 방식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반대로 현지에 맞게 바꿔야 했던 부분도 있으셨나요?

 

 

12. 독일에서 쌓은 연구 방식을 한국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최은진: 유럽에서 인상 깊게 배웠던 연구 문화는 여유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쓸데없는 대화와 질문을 통해  (이상하게도!?) 실행되는 협력이었어요. 다만 이건 유럽 문화와 연관된 것 같아서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질문하는 것은 연구적으로 여전히 유효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학생들을 지도할 때, '왜(why)'에 기반한 고민을 깊게 진행할 수 있는 질문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실없는 질문도 해서 늘 질문이 무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현정: 연구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각과 학문에 접근하는 자세는 독일에서의 경험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행정 및 업무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히 고민하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지고 있어요.

 

김의열: 현재는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응용음향 및 신호처리 연구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구실 운영과 학생 지도, 과제 진행 사이에서 중간 관리자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서 경험했던 방식, 특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방향을 정리하는 태도가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독일에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토론을 많이 하고, 방향과 역할을 비교적 명확히 정한 뒤 진행하는 편이었습니다. 한국 연구실에서는 성격이 다른 여러 일이 동시에 빠르게 진행되고, 중간에 방향이 바뀌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독일에서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제가 중간에서 미리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은 정리하고, 학생들에게 갑작스러운 변경 사항이 바로 내려가지 않도록 가능한 한 한 번 걸러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어느 한쪽이 무조건 맞다기보다는, 지금 있는 환경 안에서 연구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현섭: 독일 연구 방식의 좋은 점을 한국 환경에 맞게 필터링해서 적용하고 계신 거네요. 이 점도 세 분이 가지고 계신 특별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독일에서 만드신 연구자 네트워크는 귀국 후에도 유지되고 있나요?

 

 

13. 유럽 연구자 네트워크가 귀국 후에도 유지되고 있나요?

 

이현정: 일부 연구자들과의 협력 관계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국제 협력은 연구의 다양성과 장기적인 발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는 비교적 단기간의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인 국제 협력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김의열: 귀국 후에도 유럽에서 함께 연구했던 분들과의 연결은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슈투트가르트 대학교 지도 교수님과 슈퍼바이저와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고, 기존에 함께하던 철도 관련 연구도 논문 작성이나 학회 참석을 통해 가능한 범위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철도학회에서도 당시 함께 연구했던 분들을 다시 만나 교류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메일이나 온라인 미팅을 통해 연구 방향과 아이디어를 계속 토론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실에서 다루는 응용 대상은 조금 다르지만, 소음 및 진동 신호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큰 틀에서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계속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은진: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국제 협력을 하기에는 독립 연구자가 아니어서 아직은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랩에 소속되면 랩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연구자가 된다면, 같이 이런저런 일들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안현섭: 사실 거창하게 네트워크라고 했지만 저희가 이렇게 만나서 나누는 시간도 네트워크 활동이 아닐까요(웃음)? 연구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엔 좀 더 일상적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연구 환경 외에 삶의 질 측면에서는 한국과 유럽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14. 일상의 삶의 질 측면에서, 한국과 유럽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최은진: 아무래도 삶의 여유에서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한국은 주말 업무도 어느 정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일에 계속 치인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국인들은 능력치도 높고 일도 더 열심히 하는데, 왜 일은 줄어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주거 측면은 지방에서 살고 있기에 독일에서의 삶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육아랑 워라밸은 한국에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현정: 저도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어요. 독일은 월세 중심의 주거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전세나 주택 매매 중심의 구조가 강하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바쁜 업무 환경 속에서 택배·배달 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생활 방식 역시 차이로 느껴졌어요. 워라밸 측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한국에서는 긴 근무 시간과 높은 업무 강도가 매우 일반적이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김의열: 삶의 질 측면에서는 차이를 느낍니다. 독일에 있을 때는 전체적으로 생활이 조용하고, 느리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기숙사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에 주거 자체가 특별히 넉넉했다기보다는, 일상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과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활 속도나 일의 흐름이 훨씬 빠르다고 느껴요. 사회 전체의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편한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개인 시간이 일과 섞이는 느낌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언어, 생활 방식, 가족과의 거리 같은 부분에서는 한국이 훨씬 편해요. 비자나 체류 문제를 계속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도 사실 크고요. 어느 쪽의 삶의 질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가족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안현섭: 가족 이야기가 또 나오네요. 혹시 배우자나 가족분들도 함께 귀국하셨나요?

 

 

15. 배우자나 가족도 함께 귀국하셨나요?

 

이현정: 배우자가 먼저 귀국한 이후 귀국을 결정하게 된 사례입니다. 현재도 배우자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어 가족이 함께 정착하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최은진: 배우자가 먼저 귀국해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김의열: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안현섭: 이 교수님은 아직도 각자 다른 지역에 계신 거군요. 나름의 어려움이 있으시겠네요. 이제 마무리 질문들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귀국 결정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16. 지금 돌아보면, 귀국 결정에 만족하시나요?

 

김의열: 지금 돌아보면 귀국 결정에 만족합니다. 물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당시 저는 독일과 중국 양쪽 대학에 소속되어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고,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제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주변 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만들어진 자리였기 때문에 소중했고, 감사한 마음도 컸어요. 저는 결국 저답게 살아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과거에도 안정적인 길이 있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로 떠났고, 이번에도 비슷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돈키호테처럼 풍차로 달려가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원래 그렇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돌아온 덕분에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옆에서 함께 보낼 수 있었고, 그 시간은 제게 매우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제 스스로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유럽이냐 한국이냐보다, 현재 제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제 책상 한켠을 조금 더 단단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제 관심사입니다.

 

이현정: 개인적인 삶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배우자의 귀국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유럽에 계속 남는 방향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 같아요.

 

최은진: 귀국 결정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가족과 같이 삶을 일궈 나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다만, 배우자도 유럽에 남았더라면 저도 유럽에 남고자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안현섭: 세 분 모두 후회는 없으시다고 하시면서도,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이라는 여운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17.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현정: 앞으로도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기후 및 환경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수행하고, 독일을 포함한 국제 연구 네트워크와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자 해요.

 

최은진: 연구적으로 여전히 큰 흥미를 가지고 있어 연구계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연구적 방향은 바이오재료를 활용해서 생체 작용을 이용하거나 모방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구현하는 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연구 비전을 생각할 때는, 엄청 좋은 저널에 투고되는 연구가 아니더라도, 함께해서 같이 해내는 연구 경험을 공유하는 팀과 팀원을 만들고 싶어요.

 

김의열: 저는 커리어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한국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거창한 장기 연구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학문 안에만 머무는 연구보다는 현실의 문제와 조금이라도 연결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어요. 어릴 때 제게 방향성을 심어주었던 분들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현섭: 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연구가 꼭 거창한 목표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유럽에서 연구하면서 한국 정착을 고민하는 분들이 이 대담을 읽게 되실 텐데. 그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18. 유럽에서 한국 정착을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 한마디

 

이현정: 한국과 유럽은 연구 문화와 시스템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귀국 전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는 연구 시스템 적응, 네트워크 형성 등 여러 측면에서 국내 경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쌓은 연구 경험과 강점을 한국 사회와 연구 환경 속에서 어떻게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은진: 한국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연구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막연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한국인의 '빨리빨리'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그게 나에게 적용된다면 어떨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에요.

 

김의열: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준비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제 경험을 일반적인 조언처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저처럼 갑자기 결정하기보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나 기관, 연구 환경을 충분히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고, 유럽에 남는 것이 더 맞는 선택일 수도 있어요. 한국은 한국의 방식이 있고 유럽은 유럽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고, 스스로 의미 있다고 느끼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현섭: 세 분 모두 감사합니다. 각자의 이유로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셨지만, 결국 <내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대화가 유럽에 계신 많은 연구자분들께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솔하게 경험과 생각을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